사도행전 14장 / 복음의 증인 (01/14)

사도행전 14장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전도하다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행14:1-28)

1-3 이고니온
4-18 루스드라
19-28 환난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전도를 합니다(1-3절). 이때 많은 무리가 주님을 영접하였는데(1절), 반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선동합니다(2절). 참고로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를 가리켜 “두 사도”라고 부르는데(1,3,4,14절), 12사도에 이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파송한 복음의 증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 때와 같이 두 무리로 나뉘었습니다(4절).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와 더베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합니다(6절).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일으킵니다(8-10절). 사람들이 놀라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며 제사하려고 하자 이들은 황급히 막아섭니다(11-18절). 유대인들은 무리를 충동질하여 바울을 돌로 칩니다(19절).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으며, 그의 복음의 열정 또한 죽지 않았습니다(20-28절).

복음의 증인들로 나선 두 사람은 죽음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아무것도 그들이 가진 복음의 열정을 막아설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고난을 예상하고 있었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22절). 이들의 행적은 예수님의 행적과 유사합니다. 주님의 사명을 맡은 자이며, 동시에 주님의 제자임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환난은 우리를 주춤거리게 합니다. 하지만 사명은 우리를 계속해서 걸어가게 합니다. 주님의 역사가 그 무엇보다 크겠지요.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길 구합니다.

나의 묵상,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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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묵상
  1. 봄이아빠
    봄이아빠 says:

    날짜: 2019.1.14.
    묵상: 행14
    통독: 창40-42

    1. 주를 힘입어

    바울의 전도여행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순탄치 않습니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훼방합니다.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아니 들으면 그만인데, 오히려 그들에게 악한 감정을 품게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적극적인 방해입니다. 바울은 참 답답해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것 같습니다. 주를 위해 가는 길인데 왜 순탄하게 만들지 않냐고 따졌을 것 같습니다. 네, 저는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 상황에서 주를 더욱 힘입어 담대히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바꾸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들에게 담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됩니까. 다시 순탄해집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돌로 치려고 달려든다고 (5절) 기록합니다.

    믿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의 변화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해결되는 좋은 결과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를 힘입고 그 상황을 헤쳐나갈 담대함이 저에게 제일 필요한 기도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해도, 주를 힘입어야겠습니다. 교사로서 늘 좋은 상황과 아이들에게 행복한 결과만이 주어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로 인해 망가져가는 아이들 관계도 바라보았습니다. 아픕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고 쓰러지지 말아야겠습니다. 오히려 과정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입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인내해야겠습니다. 상황의 변화와 결과를 기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저 주의 영광을 위해 애써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2.
    바울은 자기가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합니다. 그들을 권면합니다. 믿음에 서 있길 이야기합니다. 저도 열매맺는 교회를 떠나왔지만 제 마음에 늘 성도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의 믿음을 위해 권면하는 관계로 멀리서나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2. 질그릇
    질그릇 says:

    사도행전 14장

    어제와 오늘 말씀과 함께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을 지도에 도식화한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성경 맨 뒷장에 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보게 됩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환난이 잇따릅니다. 단순 여행으로 다녀도 쉬지 않아 보이는 여정인데, 정신적, 육체적인 고난까지 더불어 있습니다. 일반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러나 그는 ‘힘들다. 못하겠다.’ 말 한마디 안합니다. (성경에 적혀 있지 않지만, 속으로 연약한 마음을 주님께 맡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돌에 맞아 쓰러져도, 몸을 추스른 후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다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권하는 장면입니다.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 호되게 당했지만, 그는 돌아갑니다. 복음을 이미 전해서 많은 제자들이 생겼지만, 각 교회를 더 든든히 세우기 위해 돌아갑니다. 그리고 22절에서 바울이 당하고 있는 환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제자들의 권고를 통해 잠시 보게 됩니다. ‘우리가’ 라고 시작합니다. 제자뿐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말합니다. 환난은 신자로서 세상을 살다보면 마땅히 잇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꼭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아닐 테지요.)

    이 환난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생겨나는 환난일 겁니다. 내 욕심대로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하다가 뜻대로 되지 못해 겪는 그런 환난은 아닐 겁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서 말씀해주십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서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러니 신자로서 환난을 마주하게 될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해야겠습니다. 이 환난 속에서 더욱 예수님을 향한 마음을 굳게 하며, 이 믿음을 붙잡으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오히려 이 환난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증거임을 확인하며, 기쁨으로 받아드려야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험을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여라. 이는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너희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복 있는 자들이니,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3. 김 윤기
    김 윤기 says:

    유명세를 탈 때 사람들의 진가가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의 본심을 엿볼 기회가 됩니다. 사람의 칭찬에 우리는 약합니다. 주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기도 합니다. 주님에 대한 인식이 우리 겸손의 뿌리가 되는 줄 압니다. 우린 모두 해 아래 있고 주님은 그 너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증인들이 그러했듯이 해 아래서 겸손히 수고하고, 또 그 안에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 줄 압니다. 오늘도 나의 마음을 주님께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