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필요성 – 필립 샤프
종교개혁의 필요성 – 필립샤프
라틴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오래 전부터 선한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공의회들의 불평거리였었다. 머리와 지체들을 총망라한 개혁은 피사, 콘스탄츠, 그리고 바젤 공의회의 슬로건이었지만, 온전히 한 세기 동안 하나의 “경건한 열망”으로만 남아 있었다.
16세기가 시작될 무렵 교회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그 어두운 면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교황제도는 세속화되고 이기적인 폭압으로 전락해, 그 멍에는 점점 견딜 수 없게 되어갔다. 교회의 분열로 교황이 둘 셋씩 존재하던 추문거리는 제거되었다고 하지만, 교황들의 도덕성은 잠시 개선된 것을 제외하고는 1492년부터 1521년 사이에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알렉산더 6세는 불법의 괴물이었다. 율리우스 2세는 영혼들의 머리 목자라기보다는 정치가요, 전사였다. 그리고 레오 10세는 종교보다는 이교의 문학과 예술의 부흥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복음 역사의 진리성을 의심했다고까지 말해진다.
많은 추기경들과 사제들이 교황들의 부끄러운 행실들을 따르고, 성직작에 대한 평신도들의 존경심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대의 학자들, 설교자들, 그리고 풍자가들의 글은 사제들과 수도사들의 무지와 세속성, 그리고 부도덕성에 대한 불평과 폭로로 가득 차 있다. 부끄럽게도 성직매매와 족벌주의(nepotism)가 거리낌없이 행해졌다. 성직자 독신제(celibacy)는 온갖 부정과 성적 불결의 냄새나는 근원이 되어 버렸다. 주교직은 자격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왕자들과 귀족들의 가장 어린 아이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독일의) 슈트라스부르크(Strassburg: 현재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도덕 개혁을 주창한 엄격한 설교자 카이저스베르크의 가일러(Geiler of Kaisersberg: 1510년 사망)는, 무식하고 세속적인 인간들을 단지 그들의 높은 신분 때문에 고위 성직들에 임명하고 있다고 온 독일을 비난하고 있다. 토마스 무르너(Thomas Murner)는 마귀가 귀족들을 성직으로 끌어들여 주교직을 독점하게 만들었다고 성토하고 있다.
여러 성직을 갖거나 교구 부재(주교가 자신의 교구에 머무르지 않는 것)는 흔한 일이었다.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Albrecht)는 동시에 마크데부르크(Magdeburg)의 대주교였으며, 또한 할버슈타트(Haberstadt)의 주교였다. 울지(Wolsey) 추기경은 잉글랜드의 대법관(chancellor)이며 동시에 요크의 대주교였고, 프랑스와 스페인 왕, 그리고 베네치아의 총독으로부터 봉급을 받았고, 500명이나 되는 시종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1528-1542)는 자신의 사생아들을 홀리루드, 켈소, 멜로우즈, 콜딩햄, 그리고 세인트 앤두르스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으로 임명하고, 자신이 총애하는 자들에게 주교직을 하사하였다.
규율이란 거의 파괴되어 버렸다. 모든 수도원 체계와 종단들은 무지와 미신, 안일과 낭비의 온상이 되었으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로이힐린(Reuchlin)과 도미니쿠스 수도사들과의 논쟁, 에라스무스의 저술들, 그리고 ‘우둔한 자들의 편지'(Epistolae Virorum Obscurorum)와 같은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학은 스콜라주의적 공교함,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과 한가한 사변의 미궁을 헤매면서, 복음의 위대한 가르침은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루터의 연장자 동료였던 칼슈타트(Carlstadt)는 자신은 완성된 성경 사본을 보기도 전에 신학박사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교육은 사제들과 귀족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절대 다수의 평신도들은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며, 강단에서 가르쳐지는 성경에 관한 교훈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할 도리가 없었다.
사제의 주된 의무는 신비스런 말로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의 기적을 행하는 것이었으며,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해 낯선 언어로 미사의 희생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많은 사제들이 기계적으로 또는 회의적인 심정으로 그런 일을 수행했다. 특별히 이탈리아에서 그러했다. 설교는 무시되었고, 대개는 면죄부, 자선금, 성지순례, 성상의 행렬들에 대한 언급으로 채워졌다. 교회당들은 좋고 나쁜 그림들, 진짜와 허구적인 유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성자 숭배와 성상 숭배, 미신적인 의식들과 예전들이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직접 예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영혼과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연합과 인격의 성화로부터 흘러나와야 하는 경건이 외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파테르노스테르(Paternoster: 주기도문)와 아베마리아(Avemaria) 암송, 금식, 자선금 기부, 사제에게의 고해, 성지 순례와 같은 기계적 행위들을 수행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선행은 질보다는 양에 의해 측정되었으며, 보상이라는 이기적 동기에 호소하는 공로의 원리에 의해 오염되었다. 죄의 용서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다. 수치스러운 면죄부 판매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위해서는 물론 더러운 이익을 위해 교황의 재가 아래 행해졌으며, 이것이 종교개혁과, 로마 교회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시작이 되는 도덕적 분노를 폭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일면적 진술이기는 하지만, 과장된 것은 아니다. 위에서 기술한 것들에 관한 한 그것들은 진실이며, 다음에 제시하게 될 밝은 측면에 의해 단지 보완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정직한 로마 가톨릭 학자들은, 비록 교회의 무류성과 또한 그에 따르는 교회의 개혁불가성(irreformability) 교리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16세기에 규율이 부패하고 도덕적 개혁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긍정한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는 예외적인 고결성을 지녔던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에 의해 제시된다. 그는 1522년 뉘른베르크(Nurnberg) 의회에서 교황과 성직자들이 타락했다는 것을 특별히 고백하고, 교황청을 개혁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트렌트 공의회는 이단을 박멸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또한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개혁을 위해” 소집되었다. 마찬가지로 교황 피우스 4세는 견진성사 교서에서 공의회의 목적 중 하나는 “도덕을 바로잡고 교회의 기율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다른 한편 교회가 이보다 더 타락한 상태에 있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14세기의 교황청 분열이나, 특별히 10세기와 11세기가 그러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교황 힐데브란트(Hilderbrand)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분열 없이,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변경함 없이 개혁될 수 있었다.
16세기에는 왜 동일하게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가? 왜냐하면 로마 교회가 결정적인 시기에 있는 힘을 다해 개혁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통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전혀 개혁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로마와 반대 방향으로의 개혁만이 가능했다.
서방 교회의 분열에 대한 책임은 동방 교회의 분열과 마찬가지로 두 진영에 다같이 있다. 물로 ㄴ인간의 법정에서 그 책임의 몫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의심의 여지 없이 개신교 진영의 폭력과 무절제에 상당한 책임이 있따. 그러나 로마 교회의 불관용과 완고한 저항에 좀 더 많은 책임이 있다. 교황청은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오랫동안 정치적 영향, 외교적 술책, 세속적인 부, 교만한 긍지, 스콜라 철학, 억압적 권위, 그리고 피에 주린 핍박과 같은 세상적인 무기들만을 사용했다. 그것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도들을 회당 밖으로 추방해 버린 유대교의 교권주의 과정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부분적 정당화를 넘어서서, 종교개혁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보아야만 할 것이다.
교황제도의 억압 바깥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를 발전시킨 것은 명백하게 섭리적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3세기 동안의 역사는 이 섭리적 계획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며 옹호인 것이다. 역사 속에서 모든 운동은 그 열매에 의해 평가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진보 운동의 요소들은 루터와 츠빙글리가 교황의 면죄부에 대해 항거하기 전에 이미 역사 속에 작용하고 있었다.
– 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 제7권 독일 종교개혁,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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